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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사람들 주변에 둥지를 틀 때가 있습니다. 아파트에 둥지를 트는 까치나 비둘기, 가로수에 둥지를 트는 직박구리, 화단에 둥지를 트는 뱁새(붉은머리오목눈이). 올해는 필자의 아파트에 새가 찾아오진 않았으나, 대신 학교에 찾아온 새가 있습니다.
본 포스트에서는, 팔자가 다니는 학교 교무실의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할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Kylie Millar]
어치는 거의 온 몸이 탁한 적갈색 깃으로 덮여 있지만 꼬리와 날개깃 대부분, 그리고 눈 아래는 검정색, 날개깃의 일부는 흰색, 그리고 날개 언저리는 개인적으로 어치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는 푸른색 깃털로 덮여 있습니다. 크기는 까치와 거의 비슷하지만, 꼬리가 까치보다 짧아서 종종 까치보다 커 보입니다.
[도토리를 먹는 어치입니다./Jerzystrzelecki]
어치의 학명인 Garrulus glandarius 는 2가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Garrulus 는 "시끄럽거나 요란함"을, glandarius 는 "도토리" 또는 "도토리의"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어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치는 도토리를 많이 먹지만, 그 외에도 씨앗이나 벌레, 과일, 다른 새의 새끼나 알 등도 자주 잡아먹는 새입니다.
[마땅한 유라시아 어치 사진이 없어 푸른어치로 대체했습니다/Marie Read]
새들의 먹이 활동 중에는 "호딩"(Hoarding)이라 불리는 다량의 먹이를 먹이가 부족한 시기를 위해 저장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호딩이라 하면 무서울 정도로 도토리를 나무에 채워넣는 도토리딱다구리가 유명하지만, 이 새에 대해선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치에게 묻혀지는 먹이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중에서도 도토리는 조금 특별한 역할을 합니다. 워낙 바쁘게 먹이를 묻어 두기 때문에, 종종 어치들이 묻은 도토리는 까맣게 잊혀지거나 다람쥐 같은 다른 동물들이 먹어버리고 합니다. 어치도 다람쥐가 파묻은 도토리를 먹을 때가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요.
어치가 잊은 채 쓸쓸하게 남겨진 도토리는 죽지 않습니다. 만약 어치가 위치를 잘 선정했다면, 도토리는 도토리나무로 자랄 수 있습니다. 확률에 좌우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어치는 주기적으로 도토리나무를 심는 셈입니다.
[새매가 어치에게 저작권료를 독촉하러 찾아왔습니다./Eugenijus Kavaliauskas]
학명의 첫 번째 부분처럼, 어치는 시끄러운 새입니다. 깩깩거리는 어치 소리로 울기도, 다른 새나 동물들의 소리를 흉내내기도 합니다. 자주 모방하는 것은 맹금류의 울음소리로, 자신의 먹이터를 독점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그 외에도 개나 고양이,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기도 합니다.
2008년경, 한국에서도 말을 따라하는 어치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요, 주인의 이름을 말하는 등, 여러모로 비범한 새였던 것 같았습니다만, 어째서인지 관련 자료가 전혀 보이지 않아 외국 영상을 들고 왔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EcsCQjmtpI
[고양이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어치입니다.]
영상을 보시면, 애웅, 왜우웅 하고 우는 고양이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가 아닌 것이 중요하지만요. 주변 나무를 둘러보기 전까지 고양이 울음소리는 고양이의 것인 동시에 아닌 셈입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어치의 소리를 고양이가 나무에 올라가 못 내려오는 것으로 오인해 도움을 청하는 사태도 있었다고 하네요.
필자도 탐조를 하다 어딘가에서 말똥가리 소리가 들리길래 주변을 둘러보다, 말똥가리 흉내를 내는 어치였다는 사실에 조금 시무룩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치가 흉내를 낼 말똥가리가 어딘가에 있었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 위안으로 여기도록 하겠습니다.
[화려히 부풀린 머리를 한 위풍당당한 어치입니다./Charls Fleming]
위 사진과 그 전에 올린 새매와 어치의 사진을 보면, 어치의 머리 깃이 삐죽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어치가 놀라거나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하는 우관 세우기 행동으로, 유라시아 어치뿐만이 아닌 거의 모든 어치 종 사이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자 나를 보라고! 난 크고! 강하다! 이렇게 주장하는 듯 합니다. 실제로 이 우관이 펴지는 크기가 자연계에서의 서열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었기도 하고요.
[필자가 가지고 있는 어치 날개깃털입니다.]
어치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깃털을 다름아닌 날개깃의 푸른 부분일 것입니다. 파란색에서 흰색 그라데이션이 띄엄띄엄 존재하는 어치 깃털은 한국 텃새의 대표적인 푸른색 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치는 물론, 여느 새의 깃을 볼 때마다 자연은 꽤나 훌륭한 미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니키 클라이턴 박사의 어린 조수들입니다./Trevor Ray Hart]
위의 글들에게서 알아보신다면 좋겠습니다만, 어치들은 상당히 똑똑한 새입니다. 까마귀목 새들이 지능에 대한 정보는 꽤나 많으며, 까마귀목에 속한 어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치들은 장난도 치고, 서로에게 새로운 지식을 알려 주고, 장례식까지 치르는 새들입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자신이 땅에 묻은 먹이가 언제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지 알고 있으며, 상한 먹이가 있는 위치를 동료에게 알려주기도 하는 사회적인 새들입니다.
사진의 어치들은 클라이턴 박사와 연구원들이 자주 쓰는 상용구를 흉내내는데, 클라이턴 박사가 어치들에게 주는 애정이 굉장하기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I love you!" 라고 합니다.
새들의 지능 실험에 이용되는 어치들은 유라시아 어치 외에도 덤불어치나 푸른어치 등이 있지만, 이 어치들 이야기는 시간이 되면 따로 해보겠습니다.
슬슬 맨 처음에 언급한 필자의 학교 교무실 이야기를 해 보아야겠습니다. 제가 이 블로그의 첫 포스트를 어치로 잡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인데요, 학교 교무실 창틀에 어치가 둥지를 틀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보고 놀랐습니다.]
4월 9일경에 어치가 짓기 시작한 둥지는 4월 20-22일경에 아홉 개의, 조금 과한 양의 알이 자리하게 되었고,
[껍질이 치워진 것을 보아 어미새가 왔다간 듯 합니다.]
5월 15일에는 갓 부화해 이렇게 눈도 뜨지 못한 꼬물이었던 어치 두 마리가,
[어째서인지 부리가 큼직해 보입니다.]
어째서인지 이 두 마리만이 5월 19일. 4일만에 덩치가 전의 2배만해졌다가,
[하품을 하는 새끼 어치입니다.]
6일이 지나 25일이 되자 눈을 떴으며 솜털이 나고 날개깃도 많이 자랐습니다. 22일에 다른 알들에 금이 갔다는 것이 발견되었지만, 아직까지 이 두 마리만이 부화한 관계로 크기가 작던 다른 일들은 무정란이었거나 부화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이소까지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둥지에 들른 어미새의 모습과 함께 포스트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교무실 어치의 근황은 생기는 대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자료 참고:
Wikipedia- Jay/Eurasian Jay
Meet the Bird Brainiacs: Eurasian Jay
The Genius of Birds-Jennifer Ackerman
Special Thanks:
어치 둥지의 사진을 제공해 주신 윤혜경 선생님과 구미중학교 2학년 교무실 선생님 일동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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